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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Wild West Chapter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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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 * *

한참 신나게 달리던 양굉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평야에서 흙먼지를 피워올리며 달리는 자들이 보였다· 암상 무리와 투닥거리느라 한발 늦은 태평대일 것이다· 지금 양굉에게 그들이 보이니 그들도 아직 양굉이 보일 터였다·

상관없었다· 그는 이제 평야를 벗어나 돌산과 계곡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서면 거리는 조금 줄어들어도 시야가 가려져 양굉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곳 어딘가에 이세민의 유산이 잠들어 있다· 양굉이 슬쩍 웃었다·

이씨 가문의 전설에선 마차 열 대 분의 보물을 이끌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양굉은 그 열 대가 모두 보물이었으리라 믿지 않았다· 당시 이씨 세가는 고대 세가였지만 결국 중원의 알력을 이기지 못하고 쫓겨난 자들이었다· 재산이 그렇게 많았을 리 없었다·

아마 그 마차 열 대 분은 대부분 그저 가구나 세가원들의 짐이었을 것이다·

암룡대이자 무림맹 비선인 양굉은 사실 이연보다 이씨 가문의 최후를 조금 더 잘 알았다· 당시의 가주 이치가 신사천에 일꾼 일부와 가문 방계를 버린 이유는 명확했다· 이치는 그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고 버려진 자들은 몸뚱이가 건강해 막일이라도 해서 살아남을 이들이었다·

그 후에도 이씨 가문은 동쪽으로 이동하며 이치와 의견이 충돌한 자 이 땅과 가주에게 실망한 자들이 계속 떨어져 나갔다· 무림맹 비선 정보를 이용해 알아낸 바로는 최후까지 가주 이치를 따랐던 세가원은 열을 겨우 넘겼다· 나머지는 다 이 신대륙에 흩어져버린 것이다·

장보도를 남긴 이가 그 열 중 하나이고 마적에게 죽은 양민들이 그 후손임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천하를 떵떵거리던 고대 세가의 후예가 무공이고 재산이고 모두 잃어버리고 한낱 농부가 되었으리란 사실에 양굉은 다시 웃음이 나왔다· 아마 그 농부는 자기 조상이 누구였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장보도가 장보도인 줄도 몰랐을 것이고·

“후손이고 조상이고 나부터 잘 먹고 잘살아야지· 남기신 보물은 내가 잘 잡숴주겠소이다 이치 가주·”

양굉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품에서 아까 대충 구겨 넣었던 장보도를 꺼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와 지금까지 달린 길을 살핀 그는 이내 다시 말을 달렸다· 황량한 바위산들이 그의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회갈색의 세계를 달리길 한참 어느새 그의 이마에선 주르륵 땀이 흘렀다· 여태 달리고 걷고를 반복했던 그의 말도 슬슬 입에 거품을 문 것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좀만 더 가자 조금만·”

양굉은 그런 녀석을 어르고 달래 돌산 계곡을 달렸다· 중간중간 장보도를 펼쳐 주변을 확인했는데 돌산이라는 게 그 모양이 대부분 엇비슷한 편이라 쉬이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시발··· 뭔 표시라도 좀 해두든가···”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보며 달리고 멈추길 또다시 한참· 어느 순간 한 방향을 정한 양굉은 거침없이 말을 달렸다· 돌산과 돌산 사이 계곡 사이로 말발굽이 일으킨 모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그리고 양굉이 그 돌산 하나를 돌아 나온 순간 그의 앞에 계곡 하나가 펼쳐졌다·

사실 계곡보다는 좁은 고원이라는 말이 맞을 듯했다· 양옆으론 뾰족한 돌산이 솟았으나 그사이는 늘어진 빨랫줄처럼 느슨한 땅이 완만한 구릉을 그리고 있었다· 만약 마을이 있다면 돌산 이쪽과 저쪽을 넘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객잔업을 하기 좋을 땅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한 이들이 있는지 낡은 나무집이 그곳 여기저기 보였다· 그걸 본 양굉이 급히 품에서 장보도를 꺼냈다·

“시발 뭐지? 이쯤인데? 여기 마을을 차렸다고? 이 사막에?”

그때 그가 타고 있던 말이 푸르륵 파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풀썩 쓰러졌다·

“어? 어어!”

양굉은 쓰러지는 말에 깔리지 않도록 냉큼 땅 위에 내려서서 말의 상태를 살폈다· 푹푹 거친 숨만 내쉬는 녀석은 도저히 그를 업고 달릴 상황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 쉬고 있어라·”

말을 그렇게 눕혀놓고 쉬게 둔 양굉은 냉큼 돌아서서 나무집들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가까워져서야 깨달았는데 낡은 집들의 상태는 도저히 지금 사람이 산다고는 볼 수 없는 상태였다· 허리 뒤에서 짧은 칼 한 자루를 뽑아 든 양굉은 그중 제일 가까운 나무집으로 뛰어가 대뜸 문을 걷어찼다·

풀썩 먼지가 뿜어지는 나무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먼지 쌓인 가구들은 몇몇 있었으나 그 역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이게 뭐여?”

양굉은 빠르게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잔뜩 찌푸린 눈으로 장보도를 꺼내 뜨문뜨문 보이는 집들과 비교했다· 그러던 중 낡은 집 중 제일 큰 집이 그의 눈에 띄었다· 그 건물 출입구 위에 간판 하나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그 간판에 그려진 문양은 장보도에도 있는 기호였다·

냉큼 뛰어간 양굉은 바람 숭숭 들어오는 그 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낡고 먼지 쌓인 가운데서도 그 집안의 가구들은 보통 고급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그의 표정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양굉은 이후 그 집안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고급 가구도 적당한 거래처만 찾으면 꽤 돈이 될 터지만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최후의 이씨 가주 이치가 가졌을 금은보화를 원했다· 정 아무것도 없다면 이세민의 무공이라도·

하지만 먼지만 풀풀 날리는 집안에는 별달리 쓸만한 것이 없었다· 책자도 몇몇 있었는데 너무 낡아 그냥 바스러지니 내용을 읽기 힘들었다· 이세민의 무공을 이런 식으로 놔두진 않았을 것이다·

“시발··· 개털이라고?”

양굉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진짜 많은 보물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작은 궤짝 하나 정도만 구해도 이득이라 생각했고 또 그 하나를 나누는 것보단 혼자 먹는 게 낫겠다 싶어 냉큼 달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면···

다급함에 집안을 마구 돌아다니던 그는 다음 순간 발밑이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살짝 울린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는 바닥을 살피려 휙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환한 표정 그대로 굳었다·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금세 따라왔군 이연· 장 형은?”

문 앞에 서서 가볍게 숨을 가누고 있던 이연은 대답 없이 양굉을 노려보았다· 밝은 바깥을 두고 그리 서 있으니 그녀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검게 보였다· 동시에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도끼는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호흡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입을 열었다·

“···개자식· 널 믿은 내가 멍청이였어·”

마치 씹어뱉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양굉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날 믿었다고? 진짜? 이봐 이연· 너나 나나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뒷골목 도둑년놈이야· 거기 어디에 믿음이 있나? 너 정말 내가 끝까지 얌전히 있으리라 생각했나? 아마 장 형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걸·”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변명이 아니라 진실을 보라는 거야· 솔직히 말해봐 이연· 너도 기회만 있었으면 나나 장 형을 배신했을 거잖아? 우리 수익배분이 어떻게 돼? 장 형이 여섯을 먹고 나와 네가 둘씩 먹기로 했지· 무공서도 무조건 장 형이 가지기로 했고· 그게 말이 되나?”

양굉은 진짜 말이 안 된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다 까놓고 보자고· 장 형도 그 무리한 비율이 끝까지 지켜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사실 장 형이랑 내 사이의 우정은 그런 금전적 신뢰 관계와는 좀 멀지· 그리고 너도 진짜 이 할만 먹을 생각 같은 거 없었잖아· 왜 장 형을 유혹했나? 배분 비율을 좀 바꿔볼 생각 아니었나? 머리 굴리는 도둑 지도 보는 도둑 칼 쓰는 도둑이 만났는데 정말 아무 문제 없이 하하호호 보물 찾고 깔끔히 나눠 헤어진다니· 소설도 그렇게 쓰면 욕먹어·”

이연이 도끼를 들어 양굉에게 겨누며 말했다·

“···어쨌든 지도를 들고 튄 건 너지· 나나 장 무사의 생각은 상관없어· 실행한 건 너뿐이니까·”

양굉은 히죽 웃었다·

“시발 할 말 없게 그렇게 따질 거야?”

이연이 그 웃음을 보고 뭐라 말하려는 순간 와락 양굉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칼이 이연의 어깨쯤을 노리고 슉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도끼로 그 칼을 걸어 몸 바깥으로 확 당겨버렸다· 의외로 양굉은 그대로 칼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휙 날아간 칼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이연의 팔을 붙잡아 비틀었다·

이연의 오른 손바닥에 힘이 풀리며 도끼가 툭 떨어졌다· 양굉은 그렇게 그녀의 팔을 비틀어 잡은 채 연타를 위해 주먹을 들었다·

그때 이연의 발이 번뜩 올라와 양굉의 가랑이를 걷어찼다· 양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허억··· 이건 반···칙···”

“반칙은 새끼야 지도 들고 튄 너고 시발!”

양굉은 양다리를 오므린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러섰다· 덕분에 이연은 속박을 풀었다· 그녀는 그렇게 양손에 자유를 얻자 그대로 양굉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었다·

고개가 휙 돌아간 양굉이 그대로 집안을 굴렀다· 오랫동안 쌓인 먼지가 매캐하게 일어났다· 이연은 자빠진 양굉을 계속 쥐어팰 생각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그러나 뒤로 누웠던 양굉은 가까이 다가온 이연의 배를 그대로 걷어차 버렸다·

그는 그녀가 주춤 물러난 사이에 일어나 곧장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엉켜 낡은 집안을 마구 때려 부수고 나뒹굴었다· 낡았지만 정돈되어 있던 집안은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갔다·

“시발! 너 사실 처음부터 이거 보물지도 아닌 거 알았지!”

한참 싸우던 양굉이 갑자기 그리 외쳤다· 쓰러진 그의 위에 올라타 마구 주먹을 내려치던 이연이 멈칫 굳었다· 양굉은 그 틈에 번쩍 주먹을 치켜올렸다· 이연의 얼굴에 그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그녀가 저편으로 밀려나자 양굉은 비틀비틀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엿 같은··· 이제 알겠다· 이 장보도가 가리킨 건 묻힌 이씨의 보물이 아니라 여기 새로 만든 이씨 가문의 본거지였어··· 넌 처음부터 다 알았을 거야· 그렇지?”

주저앉아 있던 이연은 옆으로 퉤 피를 뱉어내고 스윽 닦으며 일어섰다·

“···찾아보면 금 쪼가리라도 있긴 있을 거야·”

“아니 시발··· 여기 다 낡아빠진 탁자나 의자 말고 뭐가 있어!”

양굉은 발밑에 뭔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하지만 이연은 그런 양굉이 같잖다는 듯 보며 말했다·

“다 알면서 모른 척은· 네 말대로 여긴 이씨 세가의 새로운 본거지였어· 장보도를 가져간 인물은 신사천에서 나오는 정보를 모으기 위해 파견된 인원이었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곳과 연락이 끊어졌지· 적게나마 오던 지원도 더는 오질 않았고· 가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 파견원은 그냥 그대로 그 땅에 정착했어· 애초에 이런 사막에 가문을 재건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양굉은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멍하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이연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나중에 그 파견원이 다른 가문 사람들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살기 힘들었던 가문의 인원들은 전부 이곳을 떠나고 최후까지 남아있던 인물은 가주 이치뿐이었어· 그리고 그는 가문의 인원들이 그렇게 떠나는 와중에도 동전 한 푼 내주지 않았지· 분명 적지 않은 금은이 있었을 텐데 말이야· 마차 열 대 분은 아니어도 그 금은은 이 집안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야· 아마 거기 이치의 시체도 있겠지· 누가 수습해줄 사람도 없었을 테니까·”

“···너 너 그걸 다 알면서도 장보도가 진짜라고···”

이연이 아까 양굉과 비슷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이 정도면 진짜 장보도지· 너도 진짜 마차 열 대 분량 보물이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았잖아? 이 신대륙의 장보도 중에 제대로 된 게 뭐 얼마나 있겠어? 나야 아버지의 기록으로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고 또 보자마자 그건 줄 알았지만 원래 장보도라는 것들은 어린애 장난감 같은 물건들뿐이잖아· 난 그 제씨 가문과 다른 떨거지들이 이렇게까지 달라붙은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기껏해야 암상의 추적 정도를 예상했는데·”

물론 이 추격전이 그렇게 커진 이유는 신사천의 거대 세력 싸움이 투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그게 없었다면 이연 양굉 장건은 암상의 마적들에게서 장보도를 탈취 별다른 방해 없이 쭉 이곳까지 달려왔을 것이다· 원래는 그렇게 장보도의 소문을 들은 떨거지들은 끼어들기도 전에 끝났을 일이다·

이연은 쿵 발을 굴렀다· 마른 나무 바닥에서 텅 하고 빈 소리가 났다·

“대충 보니까 이 밑에 있는 모양인데 널 뒈지게 패 준 다음엔 내려가서 금은을 꺼내 장 무사랑 나눌 거야· 넌 한 푼도 안 줄 거고· 알았냐?”

“···시발· 그래서 장 형은 언제···”

“도둑들! 나와라!”

슬금슬금 일어나 주먹을 쥐고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은 갑자기 끼어드는 음성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밖에서 들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희는 우리 태평대에게 포위되었다! 허튼짓 말고 얌전히 밖으로 나와! 안 그럼 건물째 불태워버리겠다!”

이연과 양굉의 표정이 싹 굳었다· 서로를 마주 보던 둘은 재빨리 바닥에 굴러다니던 칼과 도끼를 집어 들었다· 급했던 탓에 이연이 칼을 양굉이 도끼를 들었다·

“시발 이거 이제 장 형을 기다려야 할 판인데·”

“미친 새끼· 기다릴 판은 지랄· 그 사람 오면 너부터 뒈질 판이겠지·”

양굉이 삐죽한 표정을 짓는데 밖에서 다시 외침이 들렸다·

“다섯을 세겠다! 그 전에 나오지 않으면 바로 불붙일 거야! 다섯! 넷! 셋! 둘!···”

“자 잠깐! 왜 그렇게 빨리 세는데! 좀 천천히 해 시발새끼들아!”

“불타 죽기 싫으면 당장 나와! 안에 두 년놈 있는 거 다 안다! 둘 다 나와!”

잠시 머뭇거리던 양굉과 이연은 결국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말을 판 태평대가 입구 앞을 반원으로 빙 둘러싸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 외침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인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여기냐? 여기가 장보도의 목적지냐?”

주욱 태평대를 둘러본 양굉은 그들 손 어디에도 횃불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툴툴 웃었다·

“공갈을 참 잘 치시는구먼· 건물에 붙일 불이 어디 있어?”

여인은 찡긋 눈살을 찌푸리더니 허리의 검을 뽑아 양굉을 겨눴다·

“지금 그렇게 거만하게 굴 때가 아닐 텐데·”

“그럼 언제 그리 굴겠소? 하나라도 유리한 점이 있을 때 그리 굴어야지·”

“···너희가 유리한 점이 있다고? 너희를 포위한 건 우리들인데?”

“있지· 우리가 그냥 나온 줄 아시오? 다 생각이 있었소·”

실제로 양굉은 꽤 여유롭고 당당해 보였다· 도저히 열댓 명의 적대적인 무인들에게 포위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 옆에 있던 이연은 이놈이 뭘 잘못 처먹었나 하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그를 돌아볼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양굉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장건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생각으로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도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처럼 천연덕스럽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태평대의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뭐지?”

“뭐가 말이오?”

“너희에게 있는 유리한 점이 뭐냐고!”

양굉은 피식 웃으며 등 뒤에 집을 슬쩍 턱짓했다·

“여긴 장보도의 목적지가 아니오· 아직 조금 더 가야 하지·”

“···여기가 아니다?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거냐?”

“안 믿으면 어쩔 거요? 장보도는 이미 불태워버렸소· 그 지도의 내용은 나와 이 친구 머릿속에만 들어 있지·”

“뭐? 장보도를 불태워?”

이연은 양굉이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장보도의 기호와 암호는 그냥 머릿속에 기억하고 꺼내 볼 수 있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굉의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간 그녀도 진짜 믿을 뻔했다·

하지만 깜짝 놀란 듯 보였던 여인은 도리어 천천히 그 놀라움을 얼굴에서 지웠다· 그리고 싸늘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시간을 끄는군· 그 칼잡이가 오길 기다리나?”

여유로운 척하던 양굉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순간 말문이 막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둑답게 시답잖은 수작을 부리는군·”

그녀는 검을 들지 않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나머지 태평대 모두가 검을 치켜들었다· 여인이 말했다·

“태평대! 장보도와 보물을 되찾자!”

“되찾기는 지랄··· 언제부터 지들 거였어?”

양굉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에 들린 도끼를 더 굳게 쥐었다· 이연도 칼을 쥐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넓은 곳보다는 차라리 집 안으로 들어가 공간을 줄이는 게 나았다·

태평대는 말 위에서 우르르 내려서는 성큼성큼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굳은 얼굴과 번뜩거리는 칼날이 위협적이었다·

양굉과 이연이 슬슬 다시 집 안으로 후퇴하려던 그때 어디선가 쒜에엑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 묘한 소리에 태평대원 중 하나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퍽 소리를 내며 그의 눈알에 화살 하나가 박혔다· 단번에 머릿속까지 꿰뚫린 대원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뒤에서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상황을 보던 여인 주선은 깜짝 놀라서 화살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말을 타고 시커먼 장포를 휘날리는 자들이 달려오며 활을 쏘고 있었다· 그 숫자는 다섯이 전부였지만 태평대는 그 숫자를 따질 틈이 없었다· 바람을 찢으며 날아온 화살들이 태평대원들의 몸에 틀어박혔기 때문이었다·

“몸을 숨겨라! 모두 건물 뒤에 숨어!”

단숨에 일곱 정도가 쓰러진 태평대는 혼비백산해서 우르르 흩어졌다· 그들은 이연과 양굉이 숨은 건물 뒤로 혹은 후다닥 뛰어 다른 건물 뒤로 숨었다· 주선 또한 말에서 내려 나무집 뒤에 숨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태평대원은 둘이 더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주선을 포함해도 다섯이 되지 못했다·

“염병··· 암상? 저 새끼들 암상인가?”

“암상 무사 중에 저렇게 말을 달리며 속사가 가능한 무사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어· 암상이 아니야·”

다시 나무집 안으로 들어가 벌어진 벽 틈으로 밖을 훔쳐보던 양굉은 이연의 대답에 눈살을 찌푸렸다·

“암상이 아니라고? 그럼 제가인가?”

“글쎄· 내가 보기엔 다른 쪽인 것 같은데·”

“다른 쪽?”

이연은 자신을 돌아보는 양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다른 쪽· 다른 고대 세가·”

“···뭐?”

“그럼 이 혼란이 이해되지 않아? 아무리 장보도의 끝에 이세민의 무공이 있다지만 그건 백 년도 더 전의 것이야· 낡은 무공이란 이야기지· 자존심 높은 고대 세가에선 굳이 힘써 노릴 물건이 아니야· 덜 여문 애송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다른 고대 세가에겐 정작 그 덜 여문 애송이가 더 먹음직스럽지·”

그제야 양굉의 머릿속에서 저 멀리 있을 제운성과 비슷한 깨달음이 스쳐 지났다· 물론 태평대의 정체를 모르니 무림맹주가 끼어들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제 삼의 세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었다·

“···이런 시발· 신사천에서 그 지랄이 나도록 내가 몰랐다고?”

“왜? 고대 세가들의 수 싸움을 도둑놈이 아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양굉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자기 신분을 밝힐 이유가 없어서였다·

두 사람이 떠드는 동안 시커먼 궁수들은 천천히 건물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흙먼지가 끼어 약간 누리끼리한 장포에 삿갓을 하나씩 쓰고 있었고 손에는 활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활에는 화살이 재여 있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태평대는 모두 엄폐물 뒤에 숨어서 그들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때 말을 멈춘 그 궁수들이 번뜩 고개를 돌리며 숨어있는 태평대원들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으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무슨 화살을 쏜 것인지 엄폐물을 꿰뚫고 그 너머의 태평대에게 꽂힌 것이다·

나무 벽 틈으로 밖을 훔쳐보던 양굉도 자신을 향해 치켜든 활을 보고 깜짝 놀라서 옆으로 몸을 굴렸다· 덕분에 방금까지 그가 있던 벽을 꿰뚫고 들어온 화살은 그냥 나무 바닥에 틀어박혀야 했다·

“시 시발···”

양굉과 이연 모두 식은땀을 흘리며 무기를 다잡았다· 화살이 나무 벽을 뚫을 수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저들의 화살이 쇠로 만든 철시鐵矢였기 때문이었다· 저런 화살을 쏘는 자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짐작도 되질 않았다·

그런데 그 한 번의 사격 이후 바깥이 조용해졌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양굉은 꿀꺽 침을 삼키며 다시 나무 벽 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밖을 훔쳐보았다·

다섯 궁수는 여전히 말 위에 올라탄 채 건물 가까이 서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들 모두 저 멀리 어딘가를 가만 바라보고만 있었다·

양굉은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보기 위해 낑낑대며 나무 벽에 얼굴을 비벼댔다· 옆에 있던 이연은 그걸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슬슬 내젓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녀가 그렇게 문을 열었음에도 궁수들은 여전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도리어 이연을 보기는커녕 바라보던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재고 있던 화살까지 쏘아대었다· 시커먼 화살이 쭉쭉 검은 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아!”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이연은 그제야 그들이 누구를 보고 누구를 향해 화살을 쏘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쪽 돌산의 능선을 타고 달려오는 남자는 그녀가 기다리던 이였다·

가볍게 화살을 튕겨내며 달려오는 이는 장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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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Wild West

Martial Wild West

Moorim West, Wild West Murim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The main character reincarnated in a world where martial arts exist. Is the land beyond the sea the world he 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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